2011년 8월 22일

계유정난과 단종 - 수양대군 vs 김종서

계유정난(癸酉靖難)은 계유(癸酉)년에 일어난 난이라는 뜻으로서, 1453년 단종이 즉위한후 1년뒤에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정난(靖難)이라는 말은 중국 역사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명(明)나라의 영락제가 간신의 난을 평정한다는 의미로 정난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영락제는 중국 명나라의 기틀을 닦았는데, 영락제는 1399년에 정난을 일으켜서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다.

수양대군은 자신이 중국 영락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자신의 거사에 계유정난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1)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는 만고의 충신이며, 충의(忠義)의 상징이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충신을 죽이고, 조카를 임금의 자리에서 쫒아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단종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때, 단종의 나이 불과 12세였다.

어머니라도 있었다면 수렴청정이라도 했겠지만, 단종에게는 아버지인 문종, 어머니인 현덕왕후도 일찍 죽어서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12살짜리 애가 뭘 한단 말인가?


(2) 김종서와 황보인등과 같은 충신들이 단종을 계속 지키고, 단종이 뛰어난 군주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일뿐이다.

정치권력이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임금 자리를 놓고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이 싸우기도 하는 그런 자리이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으며,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였다.

김종서가 만고의 충신이기는 하다.

그러나 만약에 김종서가 딴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든지 조선이라는 국가를 뒤엎을 능력을 갖고 있었다.

즉 김종서는 12살짜리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조선 왕조를 무너뜨릴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로서, 수양대군은 조선 왕조를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충신이라 할지라도, 임금 자리를 위협할 능력이 있는 신하는 제거되는게 권력의 속성이다.

뛰어난 군주였던 광해군도 임금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계유정난이 일어난 것은 1453년..조선이 1392년에 개국했는데,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12살짜리 어린 임금이 나타나고 왕권이 위협받았던 것이 계유정난이 일어난 시대상황이다.


(3) 수양대군과 단종, 김종서를 보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김종서, 사육신과 같은 충신도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면 역사의 희생자가 되는것 같다.

수양대군은 조선 왕조를 지키려 했고, 김종서는 자신의 임금 단종을 지키려 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과 김종서 자녀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록 가는 길은 달랐지만,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화해를 보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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